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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Archive   /  프로게이머서 의류사업가로…창석준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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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 비행기 표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땅에 도착한 건 20대 중반. 손에 쥔 돈은 200만원. 임시 숙소의 비용을 지불하고 전화기 개통하고 나니 빈털터리. 이제부터 하루 벌어 하루 살아야 하는 신세. 불법 아르바이트로 버티며 대학 졸업하고 창업…. 미국과 한국에서 여성의류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나루(NARU)’ 창석준(36) 대표의 사연이다. 


10대 시절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특별한 이유 없이 무역업을 꿈꾸던 10대 소년은 고등학생 때 우연한 기회에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1990년대 말 크게 유행한 전략시뮬레이션게임 스타크래프트의 각종 대회를 휩쓸면서 직업선수가 되었고 수시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또래 친구들보다 사회 진출이 매우 빨랐다. 
  

Q :특별한 청소년기를 보낸 셈인데, 부러움을 많이 받았겠어요. 그때 기분은 어땠나요?
A :당시에는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죠. 어린 마음에 성공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순간이 그리 오래 가지 않았어요. 프로게이머 세계에서 정상에 서 보지도 못했고, 대학교 수업은 따라갈 수 없어 자퇴하고 입대를 했어요. 공부나 생활 등 기본적인 부분에서는 친구들보다 오히려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 좋게 경력을 살려 취업했지만, 패배감은 지워지지 않았어요.

  

Q: 결국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했잖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A : 2009년 가을 회사에서 초대한 외부 강사의 자기계발 강연을 들었어요. 꿈과 목표, 자기관리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하라’는 메시지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며칠 동안 잠을 못 잘 정도로요. 고민 끝에 미국 유학을 가자고 결심했죠.

  

Q :강연주제가 본인의 상황과 맞물려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A :사방이 벽에 막혀 있는 느낌이었어요. 대학교 졸업을 못 하고 군대부터 갔다 와서 취직했는데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어요.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갈증이 해결되지 않았어요.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겁부터 났어요. 뭔가 막연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강연을 들은 것이죠. 꿈과 목표를 명확히 하고, 계획을 세워 하루하루 시간을 아껴 행동으로 옮기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바로 실행에 옮겨 미국유학을 가기로 결심하고 준비를 시작했어요.

  

Q :보통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외국대학으로 진학하거나, 대학 졸업 후에 석박사 과정으로 유학을 준비하죠. 부모의 도움이나 장학금을 받았나요? 준비과정이 조금 달랐을 것 같은데.
A :일단 어머니로부터 허락은 받았지만, 경제적인 도움을 바랄 형편은 아니었어요. 직장생활을 하고는 있었지만 모아놓은 돈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준비를 시작했어요. 일단 퇴직금이랑 월급으로 딱 1000만원만 모으자고 목표를 세웠죠. 6개월 어학원 수업료, 편도 비행기 표, 초기자금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부딪혀 가며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한 계획이었죠. 덕분에 고생은 죽지 않을 정도로 했고요.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아요.

 

미국 간 지 보름 만에 빈털터리 돼

Q. 그동안 생활은 어떻게 했나요? 돈 떨어졌을 때 겁은 안 났는지.
A :900만원 모아서 600만원 어학원 수업료, 100만원 비행기 표, 보름 동안 임시숙소 비용 내고 휴대폰 개통하고 나니까 정말 빈털터리가 되더라고요. 신기하게 겁도 안 나고 용기와 에너지가 솟아났어요. 오히려 한국에서 명확한 꿈과 목표가 없을 때 ‘내 인생 어떻게 되는 거지?’ 겁이 났죠. ‘ASA 칼리지’라는 2년제 학교에 입학해서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원래 목표는 4년제 뉴욕시립대였는데, 준비가 모자랐고 절차도 잘 몰라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아쉽기는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생활비는 일해서 벌었는데 워킹비자가 없으니까 불법으로 일한 것이죠. 주급 받아서 일주일 살아야 하는데, 일자리가 끊기면 정말 어려워지는 상황이었어요.

TV에서 가끔 생라면 하나로 몇 끼를 먹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에이~ 설마~’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겪어 보면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죠. 가끔 내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라면 한 박스씩 사주고는 했는데, 제게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Q: 미국에서 공부하기도 쉽지 않지만, 일자리를 잡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더 어려웠을 텐데. 
A : 아르바이트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혼인신고를 했어요. 미국에서 결혼생활을 먼저 시작하고 결혼식은 나중에 귀국해 올렸지요. 원래는 미국에서 정착할 생각이었으니까 먹고 살 방법으로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시작했어요. 먹고 살기 위해 악전고투한 경험이 도움되었는지 1호점은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그래서 2호점으로 확장을 했는데 잘 안 됐어요.

손해를 보지 않았으니 다행이었고 좋은 경험을 많이 했죠. 그다음에 아내의 전공을 살려 의류 디자인, 제조, 유통을 시작했어요. 아내의 이름 ‘강나루’에서 착안해 ‘NARU KANG’이라는 브랜드도 만들었어요. 모든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초기에 고생을 워낙 많이 해 즐겁게 넘길 수 있었어요. 학교 졸업도 했겠다, 영어도 하겠다, 아내도 같이 있겠다, 지인들도 많이 생겼겠다, 무엇보다 경험이 많이 쌓였으니 상황은 훨씬 좋아졌잖아요.

신나게 일했죠. 다만, 영주권을 받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보다 귀국해 결혼식도 올리고 한국을 사업 본거지로 삼아 사업을 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작년에 귀국했어요.


최초의 사업은 게스트하우스, 나중에 의류회사 창업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회사 ‘나루’의 사무실. 파티션 하나 없는 넓은 사무실을 홈페이지 제작회사, 패션마케팅회사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 데다가 외국 직원들 몇 명이 눈에 띄어 무척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Q:사업은 현재 어느 정도 단계에 와 있나요? 
A :미국에서 2년, 한국에서 1년 진행했으니 아직 애송이죠. 얼마 전 코엑스몰 안에 위치한 편집숍에 제품이 들어갔는데 반응이 좋은 편이에요. 온라인에서 반응도 좋고요. 한국과 미국을 거점으로 해서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나갈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Q:한국을 떠날 때부터 현재까지 걱정과 응원을 보내준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사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자랑할 만한 성과도 없어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어요. 어렵게 용기를 낸 이유가 바로 그거에요. 격려해 주신 많은 분께 “저, 죽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마디 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예전 직장 상사였던 이재형 국장(전 한국e스포츠협회 경기 국장, 현 SK텔레콤 스포츠마케팅팀 부장)께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퇴사하고 출국할 때 “살다 보면 진짜 힘들 때가 있을 거다. 그때 연락해라. 내가 꼭 한 번은 도와줄게”라며 용기를 주었어요. 

미국에서 진짜 밑바닥일 때가 있었는데 버티다 버티다 연락을 드렸더니 두말 않고 돈을 보냈어요. 6개월 후에 갚겠다고 했는데 2년 뒤에야 갚았습니다. 진짜 큰 힘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돈은 갚았지만, 마음은 두고두고 평생 갚겠습니다.

말로는 누구나 인심 쓸 수 있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힘들 때 돈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갚는 것은 진짜 어렵다. 그것도 형편이 폈을 때가 아니라 여전히 힘이 들 때 갚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쉽지 않은 일을 어렵지 않게 해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을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든다. 

[출처: 중앙일보] 프로게이머서 의류사업가로…창석준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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